시리즈 「법을 다루는 사람들: 정의론으로 읽는 한국 사법」 3편. 사실 보도에 평가를 더한 해설 기사다. 1편은 대법원장 한 사람에게 모인 권한을, 2편은 재판장에 따라 갈린 판단을 다뤘다.
한눈에 보기
판결이 판사 개인을 따라 움직이는 것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다만 나라마다 최고법원 수장에게 얼마나 많은 권한을 모아 두는지, 그 사람을 어떻게 뽑고 어떻게 견제하는지가 다르다.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의 최근 사례를 살피면 한국 대법원장 자리의 특징이 더 분명해진다.
1. 미국: 한 표를 가진 대법원장, 그리고 대통령의 공격
미국 연방대법원장 존 로버츠는 아홉 명 가운데 한 표를 가진 대법관이다.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이 인준하며, 임기는 종신이다. 대법원장에게 다른 대법관을 고를 권한은 없다.
연방대법원은 2026년 2월 20일 6대 3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매긴 관세를 무효로 판단했다. "IEEPA는 대통령에게 관세를 부과할 권한을 주지 않는다"는 다수의견은 로버츠 대법원장이 썼고, 트럼프가 지명한 닐 고서치와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이 합류했다(Jones Day).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는 판결에 찬성한 대법관들을 "수치"라고 불렀고, 고서치와 배럿을 "가족에게 부끄러운 사람들"이라고 했다(Bloomberg Law).
6월 30일 출생시민권 판결에서도 대법원은 6대 3으로 행정명령을 무효로 판단했다. 다만 헌법을 근거로 든 대법관은 5명이었고, 브렛 캐버노 대법관은 1940년 연방 법률을 근거로 결론에만 동의했다. 같은 결론에 이른 사람들도 이유는 각자 달랐다(Hunter Maclean).
갤럽 조사에서 연방대법원 직무 지지율은 9월 34%로, 사상 최저였던 7월(33%)과 비슷했다. 지지 정당별로 민주당 12%, 공화당 65%였다(Gallup).
판사 개인의 영향은 대법원 아래에서 더 크게 드러난다. 2007년 '난민 룰렛' 연구에 따르면 마이애미 이민법원에서 콜롬비아 출신 신청자의 망명 인용률은 어느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5%에서 88%까지 갈렸다. 같은 건물 안의 판사들 사이에서 나온 차이다(Stanford Law Review).
2. 영국: 위원회가 고르는 대법원장
영국 정부는 2026년 9월 8일 브리그스 경(Lord Briggs of Westbourne)이 2027년 1월 리드 경(Lord Reed)에 이어 대법원장에 취임한다고 발표했다. 선임은 "독립 선임위원회의 추천에 따라" 이뤄지고, 총리와 대법관(Lord Chancellor)의 조언을 거쳐 국왕이 승인한다(영국 정부). 대법원장을 고르는 일이 한 사람의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위원회 심사로 이뤄진다.
판사를 향한 정치권의 공격에는 사법부 수장이 직접 선을 그었다. 2025년 2월 키어 스타머 총리가 하원 총리 질의 시간에 한 가족의 체류를 허용한 판결을 "잘못됐다"고 말하자, 잉글랜드·웨일스 사법부 수장인 수 카 수석재판관(Lady Chief Justice Carr)은 "질문과 답변 모두 용납할 수 없었다"고 반박했다(LBC). 갤럽 조사에서 영국인의 사법 신뢰는 2025년 57%로 1년 새 12%포인트 떨어졌다(Gallup).
3. 일본: 유권자가 판사를 심사한다
일본 최고재판소 장관 이마사키 유키히코(今崎幸彦)는 2024년 8월 취임했다. 장관은 내각이 지명하고 천황이 임명하며, 70세에 퇴임한다(일본 재판소).
일본에는 시민이 최고재판소 판사를 직접 심사하는 국민심사가 있다. 2026년 2월 8일 중의원 총선거와 함께 치른 심사에서는 다카스 준이치(高須順一)·오키노 마사미(沖野眞已) 판사가 대상이었고, 도쿄 신주쿠구에서는 투표자의 약 19%가 파면에 표를 던졌다(신주쿠구). 실제로 파면된 판사는 아직 없지만, 판사 개인이 시민의 심사를 받는다는 원칙을 유지하는 장치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2026년 3월 동성혼 소송 6건을 15명 전원이 심리하는 대법정에 회부했다. 고등법원 판결은 위헌 5건, 합헌 1건으로 갈렸다(KSB). 같은 쟁점에도 재판부마다 판단이 달랐다.
4. 프랑스: 같은 르펜 사건, 재판장에 따라 갈린 대선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전 대표의 유럽의회 보좌관 공금 유용 사건은 재판장에 따라 정치적 결과가 갈린 대표 사례다. 2025년 3월 31일 1심(재판장 베네딕트 드 페르튀)은 징역 4년(실형 2년), 벌금 10만 유로와 함께 피선거권 박탈 5년을 즉시 집행하도록 선고했다. 이대로라면 르펜은 2027년 대선에 나설 수 없었다. 국민연합은 "판사 독재"를 규탄하는 청원을 냈고, 재판장은 살해 위협을 받아 경찰 보호를 받았다(위스콘신대).
2026년 7월 7일 항소심(재판장 미셸 아지)은 징역 3년(실형 1년)에 피선거권 박탈 45개월 가운데 30개월을 집행유예로 했다. 실제로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15개월이 이미 지난 것으로 계산돼, 르펜은 2027년 대선에 나설 수 있게 됐다(LCP). 같은 사건에서 두 재판장의 판단 차이가 한 나라의 대선 구도를 바꿨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에게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한 재판장 나탈리 가바리노도 살해 위협을 받았다(The Local). 헌법위원회 의장 인선도 사람의 문제였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지명한 리샤르 페랑은 2025년 2월 의회 표결에서 거부에 필요한 표에 1표가 모자라 겨우 임명됐다(LCP).
5. 비교: 한국 대법원장 자리의 특징
- 최고법원 수장 · 수장을 고르는 방식 · 수장이 다른 대법관을 고르나 · 시민이 판사를 직접 심사하나
- 한국 · 조희대 대법원장 · 대통령 임명, 국회 동의 · 예(대법관 제청) · 아니요
- 미국 · 존 로버츠 대법원장 · 대통령 지명, 상원 인준(종신) · 아니요 · 아니요
- 영국 · 리드 경 → 브리그스 경(2027.1) · 독립 선임위원회 추천 · 아니요 · 아니요
- 일본 · 이마사키 유키히코 장관 · 내각 지명, 천황 임명 · 아니요 · 예(국민심사)
- 프랑스 · 크리스토프 술라르 파기원장 · 최고사법관회의 제안, 대통령 임명 · 아니요 · 아니요
이 비교에서 최고법원 수장이 다른 대법관을 고르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한국 대법원장은 대법관 제청권에 더해 헌법재판관 3명과 중앙선거관리위원 3명의 지명권, 사법행정 총괄권까지 쥔다. 비교한 다섯 나라 가운데 한 사람에게 가장 많은 권한이 모인 자리다.
OECD 신뢰조사에서 법원·사법제도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다음과 같다(아일랜드 통계청 재게시 TRA312, 미국은 조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 2023 · 2025
- 일본 · — · 59%
- 영국 · 62% · 55%
- 프랑스 · 50% · 45%
- 한국 · 34% · 41%
- OECD 평균 · 54% · 54%
한국의 사법 신뢰는 올랐지만 여전히 OECD 평균보다 13%포인트 낮다. 영국과 프랑스는 판사를 향한 정치적 공격이 커진 시기에 신뢰가 떨어졌다.
정리
어느 나라에서나 판결은 판사 개인을 따라 움직인다. 미국 이민법원에서는 판사에 따라 망명 인용률이 5%에서 88%까지 갈렸고, 프랑스에서는 같은 사건이 재판장에 따라 대선 출마 여부를 갈랐다. 차이는 그 개인의 힘을 어떻게 나누고 점검하느냐에 있다. 영국은 수장을 위원회가 고르고, 일본은 시민이 판사를 심사하며, 미국의 수장은 아홉 표 가운데 한 표에 그친다. 한국은 그 권한이 대법원장 한 사람에게 가장 많이 모인 경우다. 1편에서 본 것처럼 그 사람이 누구이고 권한을 어떻게 설명하는지가 사법 전체의 결과와 신뢰를 좌우하는 이유다. 시민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4편에서 다룬다.
확인할 점
- 트럼프 대통령 발언은 보도를 통해 확인했다.
- OECD, 갤럽 등 신뢰도 조사는 질문과 방법이 달라 직접 비교할 수 없다.
- 일본 최고재판소 장관의 사법행정 권한은 이번 비교에 넣지 않았다.
- 신주쿠구 파면 비율은 공개된 파면·불파면 표 수로 계산했으며, 전국 파면률은 확인하지 못했다.
- 사르코지 전 대통령 항소심은 11월 30일 선고 예정으로 보도됐다.
시리즈 「법을 다루는 사람들」
- 1편: 조희대 한 사람이 움직이는 것들…국감이 드러낸 대법원장 직위의 무게
- 2편: 같은 법, 다른 판사…재판장 이름에 따라 갈린 형량과 판단
- 3편: 로버츠, 브리그스, 이마사키, 그리고 르펜의 두 재판장…해외에서도 판결은 사람을 따라 움직였다(이 글)
- 4편: 커뮤니티는 조희대를 어떻게 봤나…진영에선 갈렸고, 공금 앞에선 같았다
출처
- Supreme Court invalidates IEEPA tariffs — Jones Day
- Reeling from tariff ruling, Trump lobs insults at Supreme Court — Bloomberg Law
- Supreme Court preserves birthright citizenship — Hunter Maclean
- Supreme Court begins term with historically low ratings — Gallup
- Refugee Roulette — Stanford Law Review
- Appointment of President of the UK Supreme Court — GOV.UK
- Lady Chief Justice on PMQs — LBC
- Britons' trust in courts, police declines — Gallup
- 最高裁判所長官 今崎幸彦 — 裁判所
- 최고재판소 국민심사 개표 결과 — 신주쿠구
- 동성혼 소송 대법정 회부 — KSB
- Judge who sentenced Le Pen put under guard — 위스콘신대
- Marine Le Pen condamnée mais pas écartée de la présidentielle — LCP
- France probes threats against judge who sentenced Sarkozy — The Local
- Richard Ferrand nommé à une voix près — LCP
- OECD 신뢰조사 국가 비교 TRA312 — 아일랜드 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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